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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화로도 개봉하고 얼마전에도 다시 재개봉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고당일 4/11

출항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3][4] 배 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다. 견시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한다. 애당초 당시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달이 없는 칠흑같은 밤에 파도도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여러 악조건이 겹쳤기에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악조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탐조등을 설치하지 않아서 빙산을 발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출항 오전부터 빙산이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소식이 선박 사이의 무선통신으로 공유되고 있었으며 적어도 타이타닉 호는 4월 14일 6통의 경고를 통신으로 받았다. 그러나 화이트 스타 직원이 아니라 마르코니 사 파견 직원들인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 2명은 승객들의 통신 발신 업무에 쫓기고 있었고 이 계절의 북대서양의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SS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1명뿐인 통신사가 취침 중이라 무전 수신을 못해 구조하러 오지 못했다.

 

 

빙산과의 충돌

운명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39분, 레지놀드 리와 함께 견시를 보던 갑판 선원 프레드릭 플리트가 전방 450m에 높이 20m 미만의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했다. 빙산의 10분의 9는 숨어있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종을 몇번 울린 후 급히 선교에 전화로 보고했고 당직 항해사인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접수하고 선임 당직자인 1등 항해사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에게 보고했다. 보고와 비슷하게 종 소리에 전방을 바라보며 빙산을 확인한 그는 바로 좌현전타를 명령하고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를 전속 후진으로 돌려 기관실에 지시한 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일러실의 방수격벽이 닫힐 것임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다.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는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키를 최대한 돌렸으며 기관실에서도 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배의 회전반경이 너무 크고 빙산과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충분한 회전과 감속을 하지 못했다. 결국 11시 40분 우현은 빙산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접근하여 정통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우현측면이 빙산과 충돌하였다.

 

충돌직후

충돌 직후 머독은 우현전타를 지시하여 빙산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방수격벽 폐쇄 버튼을 작동시켰다. 보일러실 2호, 6호의 화부장 프레드릭 배럿을 비롯해 화부 등 선원들은 쏟아져오는 물을 피하며 허겁지겁 대피했다.

빙산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아 타이타닉은 멈춰섰다. 아래쪽 승객들은 큰 충격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고, 위쪽 승객들은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으나 잠에서 깨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은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났다. 선장실에서 쉬고 있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 역시 흔들림을 느끼고 곧바로 조타실로 향했다.

스미스 선장은 머독으로부터 빙산 발견 및 회피 시도, 그리고 방수격벽 차단여부를 간단하게 보고받았다. 그리고 좌현 윙브릿지에서 육안으로 빙산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4등 항해사 조지프 박스홀에게 피해상황을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11시 47분경, 다시 조타실로 돌아온 스미스 선장 일행은 충돌에 따른 선체 피로를 고려해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를 미속 전진으로 설정했다. 타이타닉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피해상황 조사에서 박스홀은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대로 선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대부분의 승객들과 선원들은 빙산 충돌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갑판에 흩어진 얼음조각을 가지고 3등실 승객들은 축구를 하고, 1등실 승객들은 위스키에 쓸 기념품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간의 예상을 깨고 타이타닉의 보수를 담당하는 존 홀 허친슨이 배의 누수현상이 심각하다고 조타실로 긴급하게 보고했다. 11시 52분경, 박스홀 역시 배가 빙산과 충돌하고 화부들이 대피한 뒤 10분만에 충돌 구역인 보일러실 2호, 6호와 최하 갑판의 수하물 취급소가 침수되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뒤 타이타닉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와 브루스 이즈메이 화이트스타 라인 사장이 조타실로 도착했다. 이즈메이는 배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물었고, 갑자기 불안감을 느낀 스미스 선장은 그저 걱정된다고만 답한 후 선원들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승객들을 깨우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엔진도 정지시켰다. 스미스 선장은 즉시 토머스 앤드루스 등과 함께 직접 피해상황을 점검했는데, 11시 55분에는 최하 갑판이 완전히 잠기고 수선 바로 위 층인 G 갑판의 우편원들이 우편실에서 필사적으로 우편물을 구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G 갑판의 승객들과 승무원들 또한 물이 복도로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빠져나왔다.

영화 타이타닉의 연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빙하와 부딪히며 선저에 길고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고 믿지만, 만일 그 정도의 파공이 생긴다면 수만톤 규모의 배는 순식간에 해수가 유입되어 즉시 기울어버린다. 후일 초음파 탐사로 밝혀진 실제 파공의 면적은 모두 합해 1.1~1.2제곱미터정도로, 그 거대한 배를 침몰시킨 손상치고는 경미했다. 그러나 문제는 파공의 위치와 형태. 6개의 파공들이 총 5구획에 걸쳐 길게 나는 바람에 배의 침몰은 확실해져버렸다. 타이타닉은 2구획(선수부터는 4구획)까지 물이 들어오면 침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나 선수부터 5구획 이상에 물이 차면 그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타이타닉의 격벽은 위의 E갑판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 침수구획이 5구획이 넘어버리면 선체가 부력을 잃고 앞으로 기울어지며 잠기는 와중에 해수는 격벽을 넘어 차례차례로 다른 구획까지 흘러 들어가 침몰해버리게 된다.

다시 조타실로 돌아온 앤드루스는 장시간의 계산 끝에 이미 5구획에 걸쳐 누수가 진행되고 있음을 파악했고 이대로라면 타이타닉의 침몰까지 길어야 최대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결론을 낸다. 펌프를 동원해 물을 빼낼 수는 있었지만 누수 속도에 비하면 침몰을 고작 몇 분 더 연기할 뿐이었다. 스미스 선장은 다시 조타실로 돌아가 박스홀에게 긴급타전이 적힌 쪽지를 건내주고는 즉시 구조요청을 보낼 것을 지시하고 엔진 오더 텔레그래프를 정지로 맞췄다. 오후 11시 59분, 결국 타이타닉은 완전히 멈춰섰다.

 

 

탈출 준비

 

스미스 선장은 12시 5분에 탈출 명령을 내리되, 혼란 방지를 위해 대놓고 승객들에게 침몰이 임박하다고는 알리지 않았다. 우선 승무원들을 시켜 잠들어 있던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을 갑판에 집결시키기 위해 깨우고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 시각 충돌부위의 F 갑판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12시 15분 경부터 통신사들에 의해 첫번째로 구조 신호가 보내지고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머독이 구명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보일러 폭발을 막기 위해 연돌에 달린 안전밸브를 모두 열어, 연돌 4개 중 실제 연돌 기능을 하던 3개의 연돌이 동시에 증기를 뿜기 시작했는데, 이때 발생한 큰 소음으로 인해 이후 갑판에서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같은 시각에 충돌부위의 F갑판이 잠기고 방수격벽이 있는 가장 높은 층이며 기나긴 복도가 있는 E갑판까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빵장 찰스 조그힌을 비롯한 조리사들은 비상식량으로 빵들을 준비해 구명정마다 약간씩 실었으며 악단은 승객들이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음악을 연주했다.

처음에는 승객과 선원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형식적인 절차로만 여겨 구명정에 탈 생각조차 안 했는데, 배는 아직 몸으로 느끼기는 힘들 정도로 느린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고 어두컴컴한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보트보다는 길이 270m의 강철로 만들어진 최신형 여객선이 훨씬 안전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한밤중인데다가 추운 날씨 때문에 귀찮아 했던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존 제이컵 아스터도 아내에게 "여기가 저 조그만 보트보다 안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했고 선장은 이를 승인했다. 이건 당시 사회통념상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기도 했고, 실제 통계상으로도 혼란스러운 재난상황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의 생존가능성이 더 낮은 점을 고려해 구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혼란

1시 반쯤에는 해수면이 상갑판(B갑판 및 C갑판)의 선수에 도달해 잠기기 시작했다. 밑에서는 1등실 식당이 있는 D갑판이 침수되기 시작했으며, E갑판의 스코틀랜드 로드에 물이 꽉 차 좌현으로 기울어지고 다른 구역으로 흘러가 침몰 속도가 점점 빨라졌는데, 몇몇 생존자들은 좌현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앞으로 기울어지는것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구명정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배가 몸으로도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짐에 따라 승객들도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혼란이 점점 가중되었다. 구명정도 이제 정원에 어느 정도 맞추거나 초과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약간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제가 불능될 정도는 아니었다.

1시 25분경 1시 20분에 16호정이 약 40명을 태우고 내려졌는데 여기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간호사 바이올렛 제솝은 후에 자매선 HMHS 브리타닉이 침몰했을 때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1시 25분경 14호정이 내려지려 하자 공황에 빠진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다. 이에 라이톨러의 지시로 14호정에 탄 5등 항해사 로우는 혼란을 저지하기 위에 허공에 대고 리볼버를 쐈다.

 1시 35분경 11호정은 정원을 다섯 명 초과해서 내려졌고 배에서 펌프질로 빠져나오는 물이 들어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피했다. 13호정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를 가까스로 피했으나 밧줄에 문제가 생겨 1시 40분경 옆에서 함께 내려지던 15호정은 바로 위에 내려져 깔리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다행히도 15호정에 타고 있던 화부장 바렛을 포함한 선원들이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잘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명정이 하나둘씩 내려짐에 따라 이제 후미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1시 41분경에는 15호정이, 1시 45분에는 2호정이 내려졌다. 이때 몇몇 외국인들이 타려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권총으로 위협해 쫓아냈다. 존 제이컵 애스터는 어린 아내를 태우고 아직도 빈 공간이 많은 것을 보고 타도 되냐고 물었으나 라이톨러에 의해 거절당했다. 1시 50분경에 내려진 구명정 10호정에는 어떤 여성이 배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가 구조되었다. 같은 시각 4호정이 내려졌다.

어떤 승객들, 특히 탑승이 거부된 성인 남성들 중 몇몇은 구명정에 타기 위해 구명정을 내리고 방치된 줄을 타거나 물에 뛰어들어 구명정까지 헤엄쳐 가거나 아예 선원들의 제지를 뚫고 뛰어들기도 하였다. 어떻게든 구명정에 오르기만 하면 내려가는 중이거나 다 내려진 경우 쫓아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고, 익수자는 일단 구조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니 별 말 않고 건져줬다. 대부분의 구명정이 정원 미달이어서 여유 공간이 있었고 다 내려진 뒤라면 공중에서 내릴 때보단 좀 더 태울 수 있으므로 구조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거의 없기도 했다. 물론 이 와중에 부상자들도 생겨났다.

접이식 구명정 C호정이 2시 정각에 내려지기 직전 두 사람이 뛰어내려 탔는데 한 명은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성인 남성 승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화이트 스타 해운의 회장이자 배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였다. 그는 이 때문에 돌아와서 욕을 꽤 먹었으며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도 사퇴했다. 이 구명정은 숨어 탄 네 명의 중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상적으로 내려진 구명정은 접이식 구명정 D호정으로 2시 5분에 내려졌다. 이때 해수면이 A갑판까지 도달해 산책로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상용으로 선교 위에 올려진 접이식 구명정 두 대를 제외한 모든 구명정이 떠나자 선장은 총원 퇴선 선언을 하고 남은 선원들에게 모두 제 살 길을 찾으라고 했다. 남은 사람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살기 위해 발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 남은 사람들은 남은 항해사 네 명과 함께 진수되지 못한 접이식 구명정 2척을 기다리거나 후미 쪽으로 달아나거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가 기울며 프로펠러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 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 이시도라 스트라우스가 노인의 경우 남성이라도 선원들이 대체로 태워주니 타라는 말에 다른 남자들이 구조되기 전까지는 타지 않겠다며 구명정 승선을 거절하자 아내도 선원의 구명정 승선 제안을 거절한 다음 하녀 엘렌에게 자신의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정에 태운 뒤 배에 남아 남편과 운명을 같이했다.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 있는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이 두 사람의 내용은 2016년 3월 1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된다. 철강업자 벤저민 구겐하임은 현지처와 하인을 구명정에 태운 뒤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했다. 턱시도로 갈아입은 그는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라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배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도 비슷한 길을 택했는데, 목격된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은 채 그림을 응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후의 순간 

 

2시 10분에는 바닷물이 최상층인 보트 갑판까지 다다랐다. 그때쯤 체육관 바깥쪽 휴식터에서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악단이 마지막 음악을 연주했다. 어떤 곡이 연주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력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와 영국민요 'Autumn'이다. 전자는 침몰현장에는 없었던 그의 가족이나 동료들이 그가 죽을 때 마땅히 연주했을 것이라 주장한 내용이고, 후자는 현장에 있었던 타이타닉의 무선사가 증언한 내용이다.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

2시 12분경 마지막으로 남은 구명정인 접이식 구명정 A와 B를 선원과 승객들이 힘을 합쳐 선교 옥상에서 내렸으나, A의 경우 캔버스가 제대로 덮이지 않아 누수가 일어났고, B의 경우는 내려지던 중 받치던 노가 부러져 뒤집혀 버렸다.

2시 15분에서 17분 사이에는 바닷물이 마치 파도가 흽쓸듯이 보트 갑판을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해수가 이제 배 위에서도 들어오면서 배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통신실도 침수되기 시작했고, 한계까지 버티며 구조신호를 보내던 통신사 잭 필립스와 조수 해럴드 브라이트도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구조 신호를 보낸 후 빠져나왔다.

남은 접이식 구명정 두 척은 제대로 진수되지 못한 채 물에 흽쓸려 갑판 위를 떠다녔는데 접이식 구명정 B호정은 뒤집힌 상태에서 여러 명이 매달려 있었고 A호정은 물이 반쯤 찼다. 이때 몇몇 사람들(아치볼드 그레이시, 찰스 라이톨러, 잭 테일러 등)이 환기구 때문에 빨려들어갔지만 다시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면서 물 속으로 빠져나와 뒤집어진 B호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B호정에 매달려 살아남았지만 수석 항해사 와일드, 1등 항해사 머독, 6등 항해사 무디는 A호정을 풀려다가 물살에 떠내려갔고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던 중 굴뚝 1이 수압과 기울어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선교루 쪽으로 쓰러지면서 물에 빠져있던 사람들 여럿이 깔려 죽고 말았다. 근처 접이식 구명정들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그 여파로 생긴 파도가 접이식 구명정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구명정을 배로부터 밀어냈다. 잠시 후 중앙계단의 유리 돔과 창문이 파도에 의해 깨져 물이 쏟아져 내렸다. 잠깐 후 2번 굴뚝이 미상의 폭발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선내의 온갖 가구, 기관, 잡기 등등이 쏟아지며 굉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